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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02 가치

2014. 1. 2. 00:34 일상

가치




은퇴한 교수님께서 지니고 다니시는 가방..


이 가방을 보고 몇 해전에 뵈었던 어르신이 생각이 났다. 

은퇴하신 교수님께서 물건의 가치를 아시고 사용하시는 것처럼

그 어른은 사람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셨다. 


초등학교 3학년 기간제 담임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보내고 교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정중한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하도 쿵쾅거리며 들락거려서 

조심해도 덜컹거리는게 교실 문인지라..


정중한 노크 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조심했을까 생각해 본다. 


학생 한 명의 손을 꼭 잡으신 할머니 한 분이 조심히 들어오신다.


자신의 자식보다 어리고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도 아닌데

허리를 한껏 굽히시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신다. 

사랑하는 손녀의 선생님이니까. 


자리에선 이미 벌떡 일어나 있고

어르신을 따라 나도 허리를 한껏 굽혔것만

몸둘바를 모르겠다.

손녀의 선생이라는 자격으로 

어른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바쁘다. 


예를 갖추시고,

교실에 물건을 가지러 왔노라 얘기하신다. 

교실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편하게 하셔도 된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한사코 죄송하다 하신다. 


선생님 귀한 일보시는데 

방해가 됐노라 미안하다신다. 

아니, 죄송하다신다. 


연륜도, 인품도, 어르신 발밑에도 못따라갈만큼 까마득한 인생 후배에게

귀한 손녀의 선생님이시라 한껏 예를 갖추신다. 


손녀의 물건을 챙겨 나가시면서

또 죄송하다신다. 

안녕히 계시라며 한껏 허리를 굽히시고 나도 따라 허리를 굽힌다.

나도 평소보다 더 짙은 마음으로 안녕히 가시라 인사드린다. 


어르신의 귀한 손녀가 우리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그 모습을 배운다. 

그리곤 저도 허리를 한껏 굽히고는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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